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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혁명의 영웅들: 실리콘 밸리의 유쾌한 혁명가들, 페이팔 마피아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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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업계에는 페이팔 마피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페이팔이라는 업체 출신 인물들이 마치 하나의 패밀리처럼 실리콘 밸리를 휘젓고 다니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그들이 만든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부터입니다.

페이팔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일론 머스크는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한 후 동생 킴벌 머스크와 함께 1995년 온라인 콘텐츠 출판 소프트웨어 회사인 집2(Zip2) 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1999년 컴팩이 현금 3억 7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일론 머스크는 첫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다음으로 1999년 3월 엑스닷컴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콘피니티라는 회사와 결합하여 전자지불결제시스템을 제공하는 페이팔이라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설립된 페이팔은 2001년 2월 공식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후 2002년 이베이에 인수되었는데, 인수금액은 무려 15억 달러였습니다. 페이팔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가지고 있던 직원들은 단숨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맥스 레브친은 단숨에 IT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습니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한편, 유튜브는 페이팔의 초창기 멤버였던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이 공동으로 만든 회사로, 2005년 11월에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 후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러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시점인 2006년 10월, 무려 16억 5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에 구글에게 인수되면서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주었습니다.


한 발짝 더 들어가서 지금은 세계적인 유명인이 된 일론 머스크에 대해서 들여다보자면,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제학과 물리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그는 크게 3가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인터넷과 우주, 에너지가 그것입니다. 그는 먼저 인터넷 분야에서 페이팔을 성공시켰고 다음으로 우주 분야에서는 스페이스엑스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2008년 12월 스페이스엑스는 NASA와 국제우주정거장을 왕복하는 16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계약을 맺으며 우주산업은 정부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기업 비즈니스로 성공을 했습니다.

2004년에는 에너지와 관련해서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는 테슬라모터스라는 기업을 설립했고요. 초창기에는 이 회사에 자금만 지원하다 2008년 10월에는 스스로 CEO가 되어 회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현재 세계적인 전기 자동차 업체로 부상했습니다. 또한 태양광 발전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인 솔라시티도 만들었습니다.




상생의 비즈니스

일론 머스크 이외의 페이팔 패밀리 들을 한명씩 살펴보면, 페이팔의 부사장이었던 레이드 호프만은 기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링크드인을 개발해서 CEO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였던 피터 틸에게서 투자를 받았습니다. 레이드 호프만은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인적 네트워크가 훌륭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한데, 페이스북의 성공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이드 호프만은 페이팔 마피아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공에만 시야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유망한 IT 사업가들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글로벌 IT 업계에서 큰 신망을 얻고 있습니다.

한편, 페이팔 창업자 중 한 사람인 피터 틸은 클래리엄 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창업 당시 자산규모가 11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지만 4년이 지난 2006년 하반기에는 23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피터 틸은 역시 페이스북에 상당한 규모를 투자했고, 파운더 펀드라는 투자회사를 만들어 많은 실리콘 밸리의 유망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그의 투자 프로젝트 중 흥미로운 것으로 틸 펠로우십이 있는데, 대학생들이 중퇴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페이팔의 운영책임자였던 데이빗 삭스는 룸 나인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했는데, 첫 영화로 24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트위터와 차별화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기업용 트위터 야머(Yammer)를 만들었는데 포춘 선정 500 대기업 중 80%이상이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페이팔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맥스 레브친은 역시 페이팔 멤버인 피터 틸의 투자를 받아 사진 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슬라이드를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이후 구글에 182만 달러에 매각하여 갑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지역 검색 서비스로 리뷰 전문 앱인 옐프(Yelp)라는 회사에 백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했는데 옐프가 상장하게 되면서 역시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핀터레스트 등 실리콘 밸리의 많은 업체들에 투자하여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끝없는 도전이 만드는 세상

페이팔 멤버였던 유튜브 창업자, 대만 출신의 스티브 첸은 한때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로 일했었고, 2010년 구글에서 나와 온라인 잡지 플랫폼인 아보스를 설립하였습니다. 2011년 아시아 과학자 잡지(Asian Scientist Magazine)에서 아시아에서 주목해야 할 과학자 15인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페이팔 초창기 멤버로 유튜브를 만든 미국 펜실페니아 출신인 채드 헐리는 어려서부터 예술에 뛰어난 감각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을 했습니다. 미국 월간지인 비지니스 2.0에서 ‘현 시대에 가장 중대한 50인의 인물’에서 28번째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2008년에는 미국 제작자 조합상인 뱅가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채드 헐리는 2010년 구글을 떠난 후 유튜브 고문을 맡았습니다. 이후 믹스비트(MixBit)라는 스마트폰 비디오 편집 업체이자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 조드 카림은 유튜브 최초 동영상의 주인공입니다. 독일인 어머니와 방글라데시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조드 카림은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를 취득한 엔지니어로 유튜브의 중대한 구성요소를 대부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유튜브를 성공적으로 런칭한 후, 2008년 일리노이 대학 역사상 최연소 졸업 연사로 초빙되기도 하였습니다.

페이팔 마피아가 유명한 것은 물론 그들의 프로젝트가 대체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겠지만, 서로 끌어주고 지원해주면서 계속해서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 신선한 혁신을 일으키는 도전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페이팔 마피아가 어떤 새로운 꿈을 꾸고 놀라운 프로젝트를 창출하며 세상을 변혁시켜나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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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