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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혁명의 영웅들: 현대적인 컴퓨터의 창시자, 앨런 튜링

김동훈

현대적인 의미의 컴퓨터의 개념을 설계하고 그것을 직접 제작까지 한 컴퓨터의 창시자는 앨런 튜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찰스 배비지(1791-1871)라는 영국의 기계공학자가 모든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그가 설계한 차분기관과 해석기관이 여전히 계산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단순히 산술적인 계산을 넘어서 복잡하고 다양한 명령들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 것은 역시 튜링인 것입니다. 그래서 튜링이 설계한 기계, 튜링 머신을 보편만능기계(Universal Computing Machine)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앨런 튜링은 인공지능의 개념을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앨런 튜링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그것을 어떻게 기계로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만들고 제시한 인공지능에 대한 이론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컴퓨터와 인공지능이라는 양 축을 근본부터 다진 인물이었기에, 인간의 뇌를 대신하는 현대적인 컴퓨터의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1: 학창시절의 앨런 튜링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앨런 튜링의 명성이 지금과 같이 높아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앨런 튜링이 세계 제2차대전 중 비밀 프로젝트인 암호 해석에 깊이 관여했기에 그가 수행한 작업이 극비로 오랫동안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금기시되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은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어 있었습니다.

튜링이 이룬 주요한 성과들은 1983년 앨런 튜링의 전기문인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책이 출간된 이후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제서야 비로소 그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 대중들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내에도 2015년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서 앨런 튜링의 존재를 알게 된 분들이 많아졌고,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고지식한 수학 마니아

지금부터 간단하게 앨런 튜링이 살아온 삶과 그가 어떤 일을 수행했는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앨런 튜링은 1912년 6월 23일 영국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튜링은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6살때부터는 과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제곱근 계산법을 배운 후, 혼자서 세제곱근을 계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하니 그의 수학적 천재성은 어린시절부터 유별났던 셈입니다.

열 살이 되던 해 <모든 어린이가 알아야 할 자연의 놀라움>이라는 책을 읽고, 어린 튜링은 두뇌가 하는 일을 기계가 하는 것에 대한 발상을 접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튜링은 결국 그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9살 때 사립초등학교인 헤이즐허스트에 입학하여 다녔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6년부터 셔본 학교를 다니면서 수학 공부에 더욱 열중하였습니다. 수학 이외에는 다른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과목간 성적의 편차가 심해 어렵게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3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진학하게 됩니다.

사진2: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처: Pixabay)


학창시절부터 튜링은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유연성 없고, 고지식한 성격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방위군에 참여하면서 군법의 적용을 받는 것을 이해하느냐는 질문에 별로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아니오라고 답했고, 실제로 자신이 군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상사와 마찰을 일으킨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일반인들과 달리 철저하게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만 사고하는 튜링의 특성을 잘 알려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연의 산물로 만들어진 만능 기계 아이디어

한편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전신이 되는 튜링기계의 설계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1936년에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 이 아이디어를 창안한 계기가 매우 독특합니다.

당시에 명성이 높았던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모든 수학적인 연산을 추론 규칙을 찾아서 기계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수학계에 던집니다. 증명해야 할 명제를 하나씩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학에 관한 명제를 자동으로 산출하는 추론 규칙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화두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이 있다면 항상 일정한 패턴과 규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구동되는 기계에 적용하여 자동으로 생성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야심찬 전망은 1931년 25세의 젊은 수학자 쿠르트 괴델에 의해서 논파됩니다. 그런 기계적인 방식만으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불완전성 정리라는 유명한 증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1936년 엘런 튜링은 이 증명을 바탕으로, 보다 더 직접적인 방식의 증명을 해내고 <계산 가능한 수, 자동 생성 문제의 응용에 관하여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 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창안한 특출난 기계를 도입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튜링 머신, 만능 기계(universal machine)로 불리는 컴퓨터였습니다. 이 튜링 기계의 부품들은 현대의 컴퓨터와 매우 유사합니다. 메모리 칩은 테이프로 되어 있습니다. 테이프를 읽고 쓰는 장치는 현대 컴퓨터의 입출력 장치에 해당하며, 중앙처리장치(CPU)는 튜링기계에 입력된 작동규칙표입니다.

사진3: 재현된 튜링 머신 (출처: 학술지 IEEE 스펙트럼)


원하는 지시, 원하는 작동규칙을 입력 받은 기계는 튜링기계가 되어 일을 처리합니다. 작동규칙은 기계안에 저장이 되는데, 그것은 현대의 컴퓨터 하드웨어에 설치하는 소프트웨어와 같습니다. 컴퓨터에 작업 지시를 내리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컴퓨터가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현대의 모든 컴퓨터는 이 튜링기계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작동규칙표와 작동규칙표대로 작동하는 장치, 메모리를 읽고 쓰는 장치, 테이프에 해당하는 메모리 장치로 구성되고 가동되는 것입니다.



고독한 연구자의 길

해당 논문으로 당대에 큰 명성을 얻은 튜링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이후, 연합군의 연구원으로 참가하여, 독일의 암호기계로 악명높은 에니그마를 해석하는 암호해독기를 만들어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이 암호해독기를 바탕으로 1943년 콜로서스라는 컴퓨터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튜링은 전쟁이 종식된 후 자동컴퓨터엔진(Automatic Comuputer Engine), ACE의 설계도를 1945년에 완성하고, 1950년에 모형을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작동시켰습니다.

사진4: 영화 이미테이션게임 (출처: Weinstein Company 영화제작사 와인스타인 컴퍼니)


이외에도 튜링에게는 인공지능에 관한 업적 등이 있지만 지면상 컴퓨터에만 집중하였고, 인공지능 부분은 다음 번에 상세히 다뤄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튜링은 당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로 기소되기도 했고, 극비 프로젝트에 가담한 대가로 일생 감시의 눈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강제로 투약을 강요받다 1954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치 미술계의 고흐처럼 이 고지식한 천재 수학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형벌은 가혹한 것이었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엄청난 문명의 혜택과 더불어 인류는 오랫동안 튜링을 기억할 것입니다. 한 예로 튜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튜링상(Turing Award)은 컴퓨터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며 많은 학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상금이 100만 달러인 이 상의 50번째 수상자는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든 팀 버너스 리입니다.

한편 튜링은 전형적인 독학파로 혼자서 연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연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철저하게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아 나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튜링이 탁월한 연구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하고 있으며, 이것은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남달리 놀랄 만한 연구결과나 비즈니스 성과를 내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결과물에만 연연하거나,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일희일비하며 감정과 세월을 소모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고독을 감수하고, 근본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만의 분야를 갈고 닦은 사람들이 남들이 오르지 못한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